홍대의 번화한 골목을 비켜 들어가면, 낡은 카세트 소리가 은은히 흘러나오는 곳이 있다. ‘스테레오포닉사운드’. 문을 여는 순간부터 공기는 묘하게 따뜻하다. 벽면 가득 쌓인 테이프와 레트로 오디오, 은빛 버튼을 누를 때의 ‘딸깍’ 하는 감촉까지 모두 시간이 느리게 흐르던 시절을 불러낸다. 이곳의 시작은 단순한 카페가 아니라 ‘소리를 전시하는 공간’이라는 발상에서 출발했다.
음료 한 잔을 주문하면, 함께 건네받는 것은 커피뿐 아니라 카세트테이프 한 개. 오래된 음악이 돌아가는 동안, 손끝에 닿는 감정까지도 아날로그로 변한다. 카세트를 청음하며 커피를 마시는 이곳의 경험은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하나의 ‘의식’에 가깝다.
행궁동 골목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오래된 기와 지붕 사이로 유리창에 반사된 햇살이 눈길을 붙잡는다. 그 빛을 따라 들어서면 한결 다른 공기를 품은 공간이 있다. 바로 도슨트커피하우스. 이름부터 ‘예술을 해설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 이곳은, 커피와 예술이 같은 호흡으로 공존하는 갤러리형 카페다. 문을 열자마자 들려오는 재즈 음악, 은은하게 번지는 원두 향, 그리고 벽면을 가득 채운 캔버스와 LP판, 수공예 오브제들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조화가 인상적이다.
이곳에서는 한 잔의 커피도 작품처럼 진지하게 다뤄진다. 작가가 붓을 드는 마음으로 원두를 고르고, 그날의 공기와 어울리는 향을 추출한다. 커피를 마시는 순간마저 하나의 ‘전시’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그래서 도슨트커피하우스의 방문은 단순한 카페 시간이 아니라, ‘감각을 감상하는 시간’에 더 가깝다. 햇살이 통창을 타고 흘러내리는 오후, 행궁동의 골목 풍경이 창가에 머무는 그 장면 자체가 이미 한 폭의 그림이 된다.
노고단의 능선을 바라보며 서 있는 집 하나. 지리산 끝자락, 죽정리의 고요한 마을에 자리한 ‘노고마주’는 이름 그대로 노고단을 마주한 쉼터다. 어머니가 지은 이름엔 가족의 마음이, 아버지가 세운 공간엔 오랜 세월의 정성이 담겨 있다. 전기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 이곳은 그저 가족이 함께 머물던 작은 산속의 집이었다.
세월이 흐르며 아들을 위한 수영장이 생기고, 가족을 위한 정자가 들어서면서 노고마주는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풍경을 품은 채 천천히 완성된 공간.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이곳에 오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느려지고, 오래된 기억 하나쯤이 스며든다.